고객은 어디까지 권리를 가지는 걸까?
기억도 안 나는 어느 날, 은행을 방문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은행을 방문했고, 말일에 가까워질 쯤이라 그런지 은행에는 사람이 많았다.
원래 창구에 3명있어야하는 직원이, 한 명은 식사하러 갔는지 2명 밖에 없었다.
나는 번호표를 뽑았고, 내 앞에 20명이 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은행에 도착했기에 사람이 많을 줄은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도 훨씬 많긴 했다.
창구에 직원이 두 명 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한 명은 오래 걸리는 업무를 하는지
1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한 손님만 붙들고 업무를 하고 있었다.
약 20명이 되는 손님들은 1시가 다 되어가자, 한 두명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어떤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화를 냈다.
"이렇게 다들 기다리는 거 안보여?"
"그쪽이 지점장이야?"
"이거를 해결을 해야지!"
"창구에 사람이 없으면 더 뽑아야 할 거 아니야!"
라고 소리를 질렀고,
은행에 있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보면서 어느 정도의 동의를 구하시는 듯 싶었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오래 기다린 것에 화가 나기는 하지만, 당장 해결할 수도 없으며 지금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소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할아버지는 15분 동안 소리를 질렀고, 점심 먹으러 간 직원이 어디갔냐고까지 물어봤다.
지점장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에
네..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하며 영혼 없이 대답했다.
체념이 반쯤 섞인 목소리였지만, 메뉴얼 대로 응대하는 듯 했다.
지점장이 마냥 쉬운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할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고,
나 또한 너무 오래 기다려서 힘들긴했지만,
창고에 직원이 없어서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리면 은행 본사에 민원을 넣어야 할 것이다.
지점에 있는 직원들도 손님들을 줄 세우고 싶어서 줄 세우는게 아닐텐데 거기서 화를 내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갑자기 20살 때 KFC 아르바이트 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20살 때 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에 있던 KFC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속터미널 역 뿐만 아니라, 그 곳에는 메가박스도 있어서 항상 사람들이 KFC가 패스트푸드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도심 한복판에 있는 만큼, 사람도 많았다.
그러니까, 정말로 패스트 푸드여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KFC는 항상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본사에서 정해진 아르바이트 생 시급은 최저시급이였는데 그에 비해 일은 너무 힘들었다. 밥먹을 시간도 없이 손님들이 항상 쏟아졌다.
일은 많은데 돈은 안주니 아르바이트 생들은 며칠 근무하고 연락두절되는 경우가 태반이였다.
항상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서 가르치는 과정에서 연락두절되고, 또 뽑으면 또 없어지고의 반복이였다.
그렇지만 그건 KFC의 사정, 정확히 얘기하면 고속터미널 센트럴점 KFC 직원들의 사정이였고, 손님들은 그 사정에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KFC에서 카운터를 맡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줄 설 때부터 짜증이 가득한 손님이 있었다.
정신없이 주문을 받고, 그 손님 차례가 되었을 때 이미 그 손님은 짜증이 많이 나 있었다.
"무슨 줄이 이렇게 오래 걸려요??"
라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나는 한국인의 억울할 때 나오는 첫 마디인 "아니.."를 시전했지만,
그 손님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린지 알아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냔 말이야!"
"정말 사람을 뭘로보고, 씨..!"
"주문이나 빨리 받아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20살의 나는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들이였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 나에게 그런 비스무리 한 말도 한 적 없었다.
우리 집은 아무리 화가나도 사람 앞에서 대놓고 한숨을 쉬거나, 씨...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 격는 일이라 머릿속이 햐얘지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아랫입술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차오르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 손님 업무를 꾸역꾸역하고 다음 손님을 받아야 하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너무 창피한데 눈물은 멈출 생각을 안 해서 뒤돌아서 잠깐 눈물을 훔치고 있었는데, 그 다음 손님이 화를 냈다.
여보세요 줄 서있는거 안 보여요? 빨리 주문 받아요!
그래서 울면서 커피를 내리다가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는 건 저 사람들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구나, 정말 차갑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서러워졌다. 점장님한테 나 이거 그만 둔다고, 안 한다고 창고에 들어가서 엉엉 울면서 얘기했다.
점장님은 조기 퇴근 시켜줬고,
집에 가서 얘기했더니 엄마아빠가 그건 나에게도 일정의 책임이 있다고 한 게 좀 섭섭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말씀하신 것 같다.
(근데 다음날 출근도 하고 두 달 동안 잘 다님 ㅋ)
아무튼 은행에서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1) 고객이라고 직원에게 짜증을 내도 되는 걸까
2) 지침은 본사에서 정하고 왜 감정노동은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하는 걸까
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고객이 직원에게 가지는 권리는 무엇일까?
내가 지금 고객이라고, 직원에게 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을까?
그 할아버지는 결국 오랜 시간을 뒤에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었고,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도 큰 소리가 났다.
왜 직원이 이런 것도 모르냐고, 너가 모르면 누가 아냐 소리소리를 질렀다.
기다렸을 때 부터 기분이 나빴는데, 원하는 업무를 못 하게 되니 소리를 지른 것이다.
결국 그 직원은 손님이 가자마자 울면서 창고로 들어갔다. 옛날이 생각나면서 짠했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말도 해주고 싶었다.
오히려 가족이나 친한 친구라면 동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싸우는"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렇게 업무적으로 만난 관계는 대부분 "갑"과 "을"이 있다.
"갑"이 "을"에게 행사 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업무를 제대로 안 했다고 하여, 소리를 지를 권리가 그에게 있는가?
소리 지를 권리가 있다면, 때릴 권리도 있는건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것처럼, 언어적 폭력도 행사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손님은 왕이다.. 는 이제 옛날 말이다.
손님으로 대접받고 싶으면 그에 따른 매너를 본인도 갖춰야 할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감정적으로 화내서 해결되는 일이 별로 없다. 일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도, 일시적인 것들 뿐이다.
진정으로 일을 해결하고 싶으면 차분하게, 감성적이지 않게 해야한다.
사람도 결국 동물인데 감정적이지 않아야 한다니, 인류로서 세상을 사는 건 조금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서로 배려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회사의 방침을 정하는 사람과 해결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사회가 문제인건지,
근로자에게 맘대로 대하는 사람이 문제인건지,
둘 다 문제인건지,
생각하면서 집에 갔다.
나부터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원하는 '서비스'의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집에 갔다.
사진 없으면 허전하니 석양이 지는 파리바게트 한 컷-